한국은 지금이 오후일것 같은데 보스턴은 한참 새벽이네요. 그동안 게으름 더하기 게으름을 피우다가 오랜만에 닥쳐온 논문 마감일 앞에 그동안의 게으름을 한없이 탓하면서 아무래도 이밤을 지새야 하려나 봅니다. 밤새 데이터를 분석하고 논문을 작성했던것이 언제였더라하는 생각이 문득들어서, 게으르다 자책하면서 또 이렇게 글을 쓰며 외도를 잠시 해봅니다.

냉정과 열정사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러브스토리 영화인데.. 문득 연구도 사랑처럼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할 때도 냉정과 열정이 공존해야 사랑을 쟁취할 수 있듯이, 연구할때도 어느것 하나 빠질 수가 없을 것 같네요. 사랑의 경우와 그 뜨거움과 차가움의 깊이와 형태는 다르겠지만..

세상에는 다방면으로 명석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머리가 너무나 비상해서 보고 있기만해도 경외감마저 들게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특히 '연구'를 본업으로 삼으며, 대학교 대학원을 다니고 또 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영리한 사람들 보아왔습니다. 저도 딴에는 어릴때는 똘똘하다는 말도 가끔씩 들어보곤 했었는데, '나는 발끝도 따라가기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들을 언젠가 부터 수없이 보다보니 한때는 경쟁해 보고 싶기도하고, 심지어 한수 가르쳐 주고 싶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또 주눅들기도하고 망신도 당하기도 하다가, 지금은 어느새 '인정하자'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살기 참 편해지더군요. 이제사 깨달은 것이 아쉽기까지 합니다. ^^ 저사람은 OO을 엄청 잘해. 하늘이 그렇게 축복해줬는걸..'이라는 생각 하나가 참 많은 것을 변하게 하더군요. 결혼할 즈음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 창피하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아이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명석한 사람들이 더러 연애를 잘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건 쉽게 상상이가는데, 연구를 잘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하면 상당한 의문이 들겁니다. 애석하게도 매우 명석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잘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젊은이들이 사랑에 실패하는 많은 이유가 열정은 넘치는데 냉정함의 부족때문이라면,
연구는 반대로 냉정함은 넘치는데 반하여 열정의 부족함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연구를 잘하는데 있어서, 논문을 많이 읽고 이해하고, 수식을 전개하고, 프로그래밍이나 설계를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논문을 빨리 읽고 빨리 이해하고, 수식을 잘 전개하고, 프로그래밍이나 설계를 잘한다고 해서 연구를 반드시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남들보다 영어도 잘하고, 이해력도 뛰어나고 재주를 많이 가진 연구원을 부러워하며 그렇게 되고 싶어하지만,
모든 것을 정확하고 냉정하게 판단하며 실행할 수 있게 하는 능력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열정'입니다.

막연한 '열정'이 아니라 '행동'으로 뒷받침되는 분명한 열정입니다.
'냉정'함은 문제를 발견하고 판단을 정확하게는 할 수 있지만, 문제를 발견하는데 필요한 관심은 '열정'에서 오는 것입니다.
'냉정'함은 정해진 범위내의 모든 요소를 꿰뚤어보지만, '열정'을 계속 새로운 것을 쳐다볼 수 있는 에너지를 가져다 줍니다.

연구자의 삶은 어쩌면 끊임없는 '도전'의 삶입니다. 늘 새로운 것을 접해야 하며, 오늘의 것은 내일이 되면 그냥 옛날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멈추지 않는 도전과 노력은 연구자에게는 가장 필요한 삶의 방식이며, 이렇게 할 수 있는 에너지의 근원은 '열정'에서 나오게 됩니다.

열정의 가장 큰 장점은 '벽을 허물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의 관심사와 관계가 있으면 무엇이든 공부하고, 어디든 가며, 누구든 만날 수 있게 만듭니다.
냉정의 가장 큰 단점은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입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영역인줄도 모르고 자신의 영역으로 착각하며 그것만 공부하고, 정해진 곳만 가며, 정해진 사람들만 만나게합니다.

나의 '연구'는 세상 누구와도 논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누구의 연구이든 그 연구는 '사람'을 위한 연구이므로, 세상 누구든 나의 연구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나의 연구 철학을, 기술을, 상상을, 꿈을.. 그중 어느 부분의 논의 상대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모든 연구의 출발이 '사람을 위한것'이라는데서 출발하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만큼, 누구든 아주 중요한 지적 또는 조언을 해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A고등학교, B대학의 C학과를 졸업하였기 때문에 A고등학교, B대학 수준의 친구들하고만 어울리고, 연구할때는 C학과 사람들 하고만 논의한다면 그 사람은 더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닫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자신도 한번도 연애를 안해봤고 상대방도 연애를 한번도 못해본 사람을 찾는데다가,  만나면 다른 사람하나 없이 무조건 둘이서만  데이트하기를 고집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연인을 만나는 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속에서 그들 모두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동안' 그 삶의 희노애락을 나의 곁에서 함께 할 사람을 찾는 것이듯..
연구도 '수많은 사람들이 느껴온 어려움이나 필요성'을 내가 대표로 도전해 보는 것입니다. 그 주제는 때로는 놀이터에서 놀고있는 5살짜리 아이도, 멀리서 손자를 지켜보고있는 할머니도 생각해 보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한두번의 실패를 딛고 일어서게 만드는 것도 열정이요
남들이 안된다고 하는 것을 해보고 안되는 것을 늦게나마 깨닫게 하는 것도 역시 열정이요
모두가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는 것을 기어이 해내게 만드는 힘도 열정입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원천이 열정임은 말할것도 없을겁니다.

저는 막말로 '연구의 8할은 노동이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보통 노가다라고 말합니다. ^^)
어떤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어떤 뛰어난 직관을 통한 문제발견도...
그 생각을 발로 뛰고, 눈으로 읽고, 손으로 만들어내며, 시간을 들여가는 수없는 실패와 수정을 반복하지 않으면 실현되거나 해결될 수 없습니다.
이 노동의 시간을 미리 예측하여 두려워 하거나 회피하려한다면 좋은 연구를 할 수가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똑같이 스트레스 받고, 똑같이 몸도 힘들지만.. 이 과정을 모두 견디게 만들고 결국 웃게 만드는 것도 '열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인생사 희노애락을 하늘의 섭리로 알고 즐겨야 삶이 평안하고, 더 많이 구경해야 아쉬움이 적듯..
연구하는 동안 발생하는 희노애락도 당연한 과정이라 믿고 즐겨야 연구과정이 순탄하며, 넓은 시야를 갖고 도전를 해봐야 좋은 논문이 나오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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